영휘원 앞쪽에 설치된 안내 입간판의 표기오류에 대한 의견

서울 청량리에 있는 사적 361호 영휘원·숭인원 앞쪽에 세워놓은 안내입간판과 관련한 의견을 제출하고자 합니다.

이곳에 새겨진 글자를 보면 영휘원(永徽園)의 아래쪽에 작은 풀이 글씨로 ‘조선 26대 고종황제 후비 순헌귀 엄씨 묘’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순헌귀 엄씨’라는 표현은 전혀 어법에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순헌황귀비 엄씨’ 또는 ‘순헌귀비 엄씨’도 아니고 ‘순헌귀 엄씨’라니, 참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방법입니다.

아마도 그 앞쪽에 ‘후비’라는 표현을 적었기 때문에 중복된 뜻을 피하여 ‘비’라는 글자를 지운 듯 생각되지만, 이는 전혀 합당한 표기방법이 아닌 줄로 압니다. 가령 ‘명황태황후 민씨’ 또는 ‘명성황후 민씨’를 일컬어 ‘명성황 민씨’ 라든가 ‘명성 민씨’라고 적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순헌황귀비 엄씨의 신분을 ‘고종황제 후비’라고 하는 것도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후비(后妃)는 조선왕조실록에 두루 등장하는 것으로 대개는 왕후, 왕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자빈의 경우에도 이 '후비'라는 표현이 사용된 용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칫 ‘왕의 여자’와 같은 너른 개념으로 사용되는 듯이 오인할 수도 하지만 실상은 이 경우에도 후궁은 제외되고 원비(元妃; 정비(正妃))와 계비(繼妃) 등 왕후의 반열에 오른 여인들에 한하여 불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대개는 후비(后妃)는 특정 왕비를 가리키는 말이기보다는 역대의 왕비들을 아울러 가리킬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가령, 『숙종실록』 숙종 20권,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2월 2일(경자) 기사에 보면 후비(后妃)와 후궁(後宮)이 엄연히 구분되는 말이라는 것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엄씨(嚴氏, 1854~1911)는 고종황제의 후궁 신분이었지 후비(后妃)는 아니었습니다. 고종황제 시절 여러 차례 엄귀비를 황후의 자리에 봉하라는 상소가 올려진 바 있었으나 고종황제 스스로는 이러한 주청을 끝내 가납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엄귀비는 황후에 준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일지라도 결코 황후 즉 후비(后妃)는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만약 후비의 신분이었다면 묘의 칭호가 ‘원(園)’이 아니라 의당 ‘능(陵)’이 되었지 않았겠습니까? 따라서 순헌황귀비를 고종황제의 후비라고 표현된 부분은 마땅히 ‘후궁’으로 고쳐잡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문화재청 스스로도 상당한 혼선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가령 영휘원 앞의 안내문 간판을 살펴보면 한글 설명에는 “고종황제의 후비인 순헌황귀비 엄씨 ......” 라고 해놓고도, 영문 설명에는 “Yeonghwiwon is the burial place of Lady Eom(1854~1911), a concubine of Emperor Gojong, 27th monarch of Joseon, ......”이라고 하여 캉큐바인(Concubine) 즉 후궁으로 표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문화유산정보에는 영휘원에 대한 설명문안에 “영휘원은 조선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무덤)이고 ......”라고 적고 있기도 합니다.

엄귀비에게 비(妃)라는 호칭이 주어진 것은 예전 왕조시대에 왕후에게 붙여진 비(妃)라는 것과는 달리 대한제국 시절 황제와 ‘황후(Empress)’보다 한단계 낮은 개념으로 비(妃)라는 직위가 주어졌다는 것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이 당시는 새로운 의례기준에 맞춰 종래의 세자빈 역시 황태자비(皇太子妃)로 불렀고, 의친왕비(義親王妃) 또는 순목대원비(純穆大院妃)와 같은 용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귀비라고 불렀다는 사실만으로 왕비(Queen)와 같은 반열이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온당치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한 가지를 추가하자면 영휘원표(永徽園表)의 음기(陰記)에는 ‘순헌황귀비’가 아닌 ‘순헌귀비엄씨(純獻貴妃嚴氏)’라고만 표기하고 있습니다. 엄귀비가 세상을 뜬 때가 1911년으로 이미 일제강점기인데다 고종황제가 ‘덕수궁 이태왕’으로 격하된 상태였으므로, ‘황귀비(皇貴妃)’의 ‘황(皇)’이라는 표현을 드러내어 표제로 사용할 수 없던 때였던 탓에 그렇게 표기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음기에 적혀 있는 그대로 “광무 원년(1897년) 귀인(貴人)으로 봉해지고, 광무 4년(1900년) 순빈(淳嬪)과 더불어 경선궁(慶善宮)의 칭호가 내려졌고, 다시 광무 5년(1901년)에 순비(淳妃)를 거쳐 광무 7년(1903년)에 황귀비(皇貴妃)로 책봉”된 내력이 있으므로, 가급적 엄귀비(내지 엄비)를 가리킬 때는 ‘순헌귀비 엄씨’라고 하기보다는 ‘순헌황귀비 엄씨’라고 하는 정식 칭호를 사용하는 것이 사실관계나 어법에 더 맞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위의 안내문안은 "영휘원은 대한제국 시절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소이며 ......"라는 취지로 수정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순헌귀 엄씨’라는 다소 엉뚱한 표현으로 되어 있는 안내입간판은 ‘고종황제 후궁 순헌황귀비 엄씨 묘’라고 서둘러 고쳐 잡도록 해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합당한 처결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2013.9.25

이순우(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드림.

1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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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자랑스러운 우리의 세계문화유산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에 대한 귀하의 관심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귀하께서 수정 의견을 주신“사적 361호 영휘원·숭인원 앞쪽에 세워놓은 안내 입간판”과 관련하여 답변드리겠습니다. 

  귀하께서 제시한“영휘원 앞쪽에 설치된 안내 입간판의 표기 오류에 대한 의견”을 우리 소에서 다각적으로 검토한 결과 충분히 일리 있고 타당한 의견이라고 판단하여, 차후 입간판 수정 시 적극 반영하여 시행할 계획임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안내판 수정 시 전문가 자문 등 기타 행정적인 절차 등을 이행해야 하는 관계로 반영 시까지 다소 시일이 걸릴 수 있음을 미리 양해를 드리는 바입니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귀하의 깊은 관심과 애정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기타 궁금하신 사항은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중부지구관리소 김재섭(02-972-0370, [email protected])에게 연락주시면 성실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문고 답변 확인 후 바쁘시더라도 꼭 만족 여부를 표기하여 주시면, 귀하의 고견을 향후 업무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담당부서 :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중부지구관리소 (☎ 02-972-0370)
    관련법령 :
기타  

출처: 국민신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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