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마시아 군대의 꺾이지 않는 의지는 발로란 전역에 잘 알려져 있다. 그 올곧은 의지를 칭송하는 사람도 있고 질색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도 감히 그들을 얕보지는 않는다. 데마시아의 무관용 윤리 강령은 병사가 됐든 시민이 됐든 상관없이 엄격하게 적용되며 전투 중 그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거나 항복할 수 없다. 지휘관들이 앞장서서 귀감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원칙은 자연스레 병사들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데마시아의 힘'이라는 칭호를 받은 전사 가렌은 특히 군 장교들의 모범으로서 전형적인 명장의 본보기였다.
데마시아와 그 숙적 녹서스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웅을 탄생시켰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영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가렌이 처음으로 사악한 칼날 카타리나와 검을 맞댄 것도 양국 군대의 사납게 휘날리는 깃발 아래였다. 무용담이나 후일담이란 본래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것. 그 둘의 전투를 바로 앞에서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병사들은 무기와 무기, 무기와 뼈가 수없이 부딪히며 아우성치는 전장의 교향곡 속에서 가렌과 카타리나만이 둘만의 치명적인 왈츠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 싸움이 끝난 후 가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돌아왔다. 데마시아군의 자랑이며 불굴의 선봉대를 이끄는 그 가렌이? 아무리 격렬한 전투를 겪어도 단 한 번도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던 그 가렌이? 병사들의 놀란 눈빛 뒤로 공공연한 소문이 퍼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피로 때문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가렌은 그날 이후 사악한 칼날 카타리나와 맞붙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앞장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곤 했고, 그럴수록 문제의 소문에도 힘이 실렸다.
그러나 데마시아 윤리 강령의 화신인 가렌은 한 번도 해명하지 않았다. 평범한 이들은 호적수를 만나는 전사의 기쁨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렇게 아름다우면서도 모든 면에서 자신과 정반대인 상대와 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가렌에게는 살아가는 이유까지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적을 처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 옆의 적과 함께 한 칼에 베어버리는 것이다.''
-- 가렌, 야전 전략에 관한 토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