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프렐요드의 척박한 환경에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세주아니는 달랐다. 물론 처음부터 그녀가 지금처럼 강인하고 용맹한 전사의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이 불모의 땅에선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세주아니는 어려서부터 부족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며 자랐다. 자신의 형제 중 유일하게 10살이 넘도록 살아남기는 했지만, 머지않아 주변 사람이 그래 왔듯 비참한 죽음을 맞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주아니는 절망적인 마음이 되어 점성술사를 찾아갔고, 놀랍게도 그녀에게 주어진 운명은 비참한 죽음이 아니라 분단된 프렐요드 영토를 하나로 통일할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게 된다.
그녀는 이 운명을 굳게 믿었고,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혹독한 추위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가차 없이 냉정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주아니는 다른 사람이라면 죽고도 남았을 고통을 견디며 극한의 수련에 돌입했다. 음식도 털옷도 마다한 채 눈보라와 정면으로 맞서 살갗을 에는 매서운 바람을 그대로 견뎌냈고, 이 혹독한 환경에서 야만적인 전투 기술을 몸에 익히며 고통이 힘으로, 배고픔이 용기로, 추위가 약자를 걸러내는 아군으로 바뀔 때까지 수련을 거듭했다.
세주아니 휘하의 병사들 역시 패기 있게 견뎌내거나 아니면 깨끗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단련되어 갔다. 동시에 부족에서 제일 강한 전사들과 한 명씩 차례로 대련을 펼치며, 다리가 풀려 더 이상 서 있지 못할 지경까지 훈련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세주아니는 부족의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우러러보는 부족 전사들에게 자신을 본보기로 삼을 것을 명령했고, 세주아니의 통치 아래 부족은 전에 없이 강성해졌다. 언젠가 그녀가 프렐요드를 정복하는 날이 오면, 살아남은 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왕국을 건설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
그러나 세주아니가 계획했던 대정벌은 피 튀기는 전쟁의 모습이 아닌 느닷없는 평화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첫날, 세주아니의 진영에 애쉬가 보낸 사절단이 곡식을 선물로 들고 줄줄이 찾아들었다. 애쉬의 의도는 불 보듯 뻔했다. 두 부족이 결합하게 되면 겨울 발톱 부족은 다시는 굶주림에 허덕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세주아니에게 이것은 선물이 아니라 모욕이었다. 전투 대신 농사를 선호하는 애쉬 부족의 생활은 실로 경멸스러운 삶 그 자체였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마르고 약해빠진 그들을 보며 그녀는 코웃음 쳤다.
이윽고 세주아니는 부족민을 한데 모으고서 애쉬가 보낸 곡물에 불을 질렀다. 그녀는 연단 위에 올라서서 애쉬의 이런 자선행위는 우리 부족을 나약하게 만들고 결국엔 괴멸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 선포했다. 세주아니는 사절단이 들고 온 보급품을 갈기갈기 찢어서 그들의 품에 돌려보냈다. 오직 강자만이 프렐요드에서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아바로사 부족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뒤로 한 채 세주아니는 자신의 부대를 소환했다. 그리고는 오늘의 뼈아픈 교훈을 널리 알리기 위한 대원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나는 얼음에서 태어나 폭풍우 속에 빚어져 혹한으로 단련됐다.''
-- 세주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