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니아에는 예로부터 커다랗고 흉물스러운 구덩이 하나가 있었다. 이 구덩이에서는 부패한 기운이 흘러나왔는데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세상 전체가 타락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때문에 아이오니아의 원로들은 구덩이 위에 신전을 짓고 파수꾼을 두어 부패한 기운을 억제하고자 했다. 이 일의 책임자가 바로 신전의 수호자 바루스였다. 아이오니아 최고의 전사들만이 신전 수호자로 뽑힐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받은 소임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활 솜씨를 갖추고 성품 또한 고귀했기에 어찌 보면 신전의 수호자는 정확히 바루스를 위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바루스는 신전 근처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며 수련에만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녹서스의 군대가 아이오니아를 침공했다. 그런데 하필 신성한 신전이 그들의 진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루스는 녹서스 기습 부대들이 휩쓸고 간 자리마다 시신과 폐허가 즐비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자신마저 없으면 몇 안 되는 마을 사람들이 진군해 오는 전쟁 기계들을 막아낼 방도가 없을 터였다. 그러나 동시에 끝까지 남아 신전을 수호해야 하는 것 또한 바루스의 의무였다. 신전이 가둬두고 있는 타락한 기운은 절대 세상에 풀려나면 안 될 것이었기에. 결국, 바루스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파수꾼의 임무를 완수하는 길을 택했다. 결전의 그 날, 사원을 빼앗으려던 녹서스 부대들은 바루스의 화살 아래 모조리 격파됐다. 그러나 신전을 지켜내고 마을로 돌아간 그의 앞에는 연기 자욱한 폐허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적들의 칼끝에 목숨을 잃은 가족을 보자 회한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이내 끓어오르는 증오로 변했다. 바루스는 녹서스 정벌대 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죄다 죽여 버리겠다고 맹세했다.
복수를 위해서는 먼저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모든 걸 희생해 가며 지켜냈던 신전 밑바닥, 타락한 구덩이의 부패한 에너지를 제 것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구덩이는 타오르는 불꽃이 양초의 심지를 탐하듯 바루스를 통째로 집어삼켰고 추악한 기운은 그가 지닌 고귀한 내면의 힘을 잠식해 송두리째 정복하고 말았다. 복수심에 모든 걸 던지고 시꺼먼 불길에 몸을 내맡긴 바루스는 몸속으로 파고드는 증오의 힘을 느꼈다. 다시는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지만 애초에 모든 것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추악한 기운은 바루스에게 적을 파멸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적을 파멸시킬 수만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 따윈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바루스는 구덩이를 나와 아이오니아 정벌에 관여한 자들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 그리고 이 여정은 결국 가장 악명 높은 전범들을 쫓아 여기, 리그 오브 레전드로 그를 인도했다.
''화살은 찰나만 살 뿐이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맞춰야 할 대상에만 집중한 채.''
-- 바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