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갑산
오갑산은 2개도(경기,충북), 3개군(음성,여주,충주)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명산으로 삼국시대 에는 오압산(梧壓山)이라 불리었다. 한때 오압사라는 거찰을 배치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으며 미륵좌불 하나만이 지방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지역이었던 오갑산은 한수지역의 거대한 농토를 확보하기 위한 양국의 크고 작은 싸움이 잦았던 곳으로 오갑산 정상에 진을 치고 군대를 주둔하면서부터 오갑산이라 불려지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과 전투를 하기 위해 진을 쳤으나 왜군과의 전투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그 이후 오갑산 정상을 이진봉이라 하고 이진봉 북방 8부능선의 펑퍼짐한 갈대밭을 진터라고 부르고 있다. 오갑산 앞의 삼태봉은 통신수단이었던 봉화터가 지리하고 있는데 맑은 날에는 사방 백리길이 훤히 보인다. 이름난 산인만큼 곳곳에 얽힌 사연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오갑산은 바위가 거의 없는 흙산이면서 이상하리만큼 우뚝하다. 기름진 흙산이라서 숲이 울창하고 닭발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 산줄기도 많다. 비탈도 산자락은 순하지만 머리 부분은 매우 가팔라서 고스락에 오를 때는 매우 힘이 들고 산행의 맛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흙산인 데도 오랜 세월과 많은 비바람에 어떻게 그 우뚝함을 지키고 의연히 서있을 수 있는지 신기하다.오갑산은 2개도(경기,충북), 3개군(음성,여주,충주)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명산으로 삼국시대 에는 오압산(梧壓山)이라 불리었다. 한때 오압사라는 거찰을 배치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으며 미륵좌불 하나만이 지방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지역이었던 오갑산은 한수지역의 거대한 농토를 확보하기 위한 양국의 크고 작은 싸움이 잦았던 곳으로 오갑산 정상에 진을 치고 군대를 주둔하면서부터 오갑산이라 불려지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과 전투를 하기 위해 진을 쳤으나 왜군과의 전투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그 이후 오갑산 정상을 이진봉이라 하고 이진봉 북방 8부능선의 펑퍼짐한 갈대밭을 진터라고 부르고 있다. 오갑산 앞의 삼태봉은 통신수단이었던 봉화터가 지리하고 있는데 맑은 날에는 사방 백리길이 훤히 보인다. 이름난 산인만큼 곳곳에 얽힌 사연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오갑산은 바위가 거의 없는 흙산이면서 이상하리만큼 우뚝하다. 기름진 흙산이라서 숲이 울창하고 닭발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 산줄기도 많다. 비탈도 산자락은 순하지만 머리 부분은 매우 가팔라서 고스락에 오를 때는 매우 힘이 들고 산행의 맛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흙산인 데도 오랜 세월과 많은 비바람에 어떻게 그 우뚝함을 지키고 의연히 서있을 수 있는지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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