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에서 가장 먼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재가 우리 고장에 있으니 이것이 바로 1966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이다. '별신제(別神祭)'란 전국 어느 곳에서 여러 유형으로 있는 향토신에 대한 제사인데 우리 고장의 '은산별신제'는 토속 신앙이 바탕이 되는 제전에 군대의 의식이 가미된 장군제적 성격이 짙은 의식 행사로서 특이한 것일뿐더러 그 규모 또한 전에는 「진대베기」에서 시작하여 「장승제」까지 장장 20일에 걸쳐 수만의 군중들이 전국에서 운집하는 등 우리나라 별신제의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간소화해서 격년제로 대·소제를 실시하며 대제시에는 6일간 실시한다. 이 '은산별신제'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아득한 옛날에 이 은산 지방에 지독한 괴질이 크게 퍼졌다. 백약이 무효로서 날마다 죽어 갔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이골안에 사람의 그림자가 없어질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이 때 그 골안에 사는 90이 넘는 노인이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이 꿈 속에 금빛 번쩍이는 투구를 쓰고 철갑옷을 입은 한 장군이 백마를 타고 나타나더니 「나는 백제를 지키던 장군이었다. 이 곳은 우리가 나라 광복을 위하여 죽음을 맹세하고 싸운 자리다. 그러므로 내 부하였던 많은 애국 장병들의 원한 맺힌 시체가 어지럽게 묻혀 있다. 그러니 네가 나서서 이 유골들을 수습하여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기 바란다. 그러면 그 보답으로 지금 퍼지고 있는 괴질을 말끔히 물리쳐 주겠노라」고 말하였다. 노인은 얼른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맙소, 노인 부탁하리다」하고 장군은 그 많은 부하 장병들이 묻혀 있는 곳을 자세히 가르쳐 주며 또 3년에 한 번씩 제사를 올려 줄 것을 부탁한 뒤「이제 부하들도 편히 눈감고 쉬게 되었고 나도 또한 마음 놓이게 되었소」하더니 도로 백마에 올라 타고 어디론가에 홀연히 떠나갔다. 다음날 노인은 고을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이 말을 전하고 협력을 얻어 백제 광복군 유골 수습에 나섰다. 신기하게도 노인이 파 보라고 한 곳을 젊은이들이 파면 틀림없이 유골이 나타났다. 이리하여 그처럼 무섭게 기승을 부리던 괴질도 불과 수일만에 꺼지는 불처럼 이 고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 때부터 은산 지방에서는 꿈에 현몽한 장군과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꾸준히 제사를 지내면서 오늘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 시대 지독한 일본 관헌들이 미신과 비경제적이란 이유로 이 '은산별신제'를 못하게 막자 이 해에 전염병이 발생한 일이 있었다고 노인들은 지금도 그 사실을 회고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