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종목 럭비 경기유래
1823년 말경 영국의 럭비학교에서 풋볼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득점이 없는 가운데 끝날 무렵 돌연 월리엄 웹 엘리스(william Webb Ellis)이라는 소년이 상대가 킥한 볼을 잡고 맹렬한 스피드로 상대편을 돌파하여 골라인으로 달려들었다. 당시는 드리블 이외는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꿈에도 생각지 못한 위반행위가 오늘날의 럭비의 기본적인 규칙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종래의 규칙을 과감하게 무시한 이 경기가 계기가 되어 지금의 럭비 룰의 기초가 이 학교에서 초안되었고, 이것이 각 학교 사이에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팀의 수도 자연히 늘어남에 따라 규칙의 통일도 필요해졌으며, 그에 따라 발만으로 하는 축구경기를 위한 LFA(London Football Association:런던풋볼협회)가 1863년에 설립되었고,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럭비경기를 위한 RFU(Rugby Football Union:럭비풋볼협회)가 1871년 설립되었다.
그후 럭비는 통일된 규칙으로서 급속도로 발전하여 1873년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하여 전세계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884년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시합에서 사고가 생겨, 이를 해결하기 위해 1890년 영국과 영연방국가를 중심으로 IRB(International Rugby Board:국제럭비연맹)가 결성되었다.
럭비 경기는 1800년대 초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의 럭비학교(Rugby School)에서 처음 유래된 것으로 학교의 이름을 따서 럭비라고 불리게 되었다. 7인제(Seven-a-side ; Sevens) 럭비는 1883년 스코틀랜드의 경계선에 위치한 멜로즈(Melrose)라는 어느 곳보다 럭비 경기가 아주 인기 있었던 도시에서 Nigel Haig에 의해 고안되었으며, Haig는 멜로즈市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약식 럭비를 제안하였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멜로즈市의 경제사정을 호전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였고, 그의 예견이 적중함으로써 7인제의 럭비는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