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와 외국어에 대한 논의가 그동안 있어 왔지만, 아직까지 그것을 정확히 가를 만한 기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논의를 거듭해 가면서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분 짓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있었는데, 그중 ‘쓰임의 조건’과 ‘동화의 조건’이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쓰임의 조건’은 우리말 문맥 속에서 널리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물론 이것은 특정한 담화에 한두 번 사용되고 말거나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널리 쓰여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동화의 조건’은 외국어가 원래 언어에서 지니고 있던 특징을 잃어버리고 우리말의 특징을 지니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화는 대개 음운, 문법, 의미의 세 가지 면에서 이루어집니다.
음운상의 동화는 외국어가 우리말 속에 들어와 쓰일 때 그 발음이 우리말 소리로 대치되는 것을 말하는데, 영어의 [f]나 [r] 소리가 우리말에서는 ‘ㅍ’, ‘ㄹ’ 소리로 바뀌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문법 면에서의 동화는 원어에서 가졌던 성, 수, 격, 호응 관계 등의 기능이 없어지고 우리말에서 새로운 문법적 지위를 부여받게 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단수와 복수를 구별해서 쓰는 ‘shirt’가 국어에서는 항상 복수 형태인 ‘셔츠’의 형식으로만 사용된다든가 외국어 단어가 우리말에서 형용사나 동사 구실을 할 때에는 항상 ‘-하다’ 형태로만 사용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의미 면에서의 동화는 우리말 속에 들어와 그 고유한 의미가 변화되는 것을 말하는데, 국어에서 ‘boy’가 식당이나 호텔의 종업원을 뜻하거나 ‘madame’이 술집이나 다방의 여주인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화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는 입장은 외래어 개념을 엄격하게 정의하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각에서는 ‘쓰임의 조건’과 ‘동화의 조건’을 모두 갖춘 부류만을 외래어로 인정하고 그 밖의 것들은 ‘외국어’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출처: 국립국어원